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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警의 전설… 경찰 첫 여성 강력계장 박미옥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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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현샘 댓글 0건 조회 9,421회 작성일 19-02-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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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警의 전설… 경찰 첫 여성 강력계장 박미옥 경감


"차라리 조폭이 수사하기 쉬워… 경찰·조폭간 큰 싸움? 영화 속 얘기"

첫 강력계 女형사 21명중 1명
1991년 女형사기동대 뽑혀… 범인 잘 잡아 초고속 승진, 9년만에 순경에서 경위로

형사의 진짜 체력은 '이골'
사건 터져 한두달 잠 못자도 팽팽한 긴장감 끝까지 유지… 이골 나지 않으면 못버텨

강력반엔 女형사 꼭 필요
피해자와 소통 더 잘하고 사건 현장에 널려있는 단서 다른 시각으로 찾을 수 있어

사건 복 많은 형사
신창원 탈주 때 수사팀 참여, 일기장 분석해 검거에 한몫… 청송교도소 출신 납치범도 잡아

사기범이 가장 싫어
1년을 두고도 계속 사기 쳐… 뼛속까지 믿을 수 없어, 가장 위험한 건 소매치기

경찰 첫 여성 강력계장 박미옥 경감 1991년 9월 서울지방경찰청은 강력계 산하에 여자형사기동대를 창설, 여형사 21명을 뽑았다.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들이었다. 당시 23세, 4년 차 순경이었던 박미옥은 그중 막내였다. 부녀자 납치와 강도·강간, 인신매매 등 여성 대상 범죄가 들끓던 시절이라 경찰 내에선 여자 형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때맞춰 창설된 여자형사기동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보통 고달픈 게 아니었다.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떠났다. 후배들이 속속 충원됐지만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는 사이 박미옥은 강력계 형사 생활 25년을 맞았다.

박미옥(47·서울 강서경찰서 강력계장) 경감은 여경(女警) 사이에서 전설이다. 여경이 강력계에서 경감이 되고 일선 경찰서 강력계장을 맡은 건 그가 처음이고, 현재까지 유일하다. 172㎝ 키에 짧은 머리, 바지에 단화 차림, 말투엔 경북 영덕 출신의 투박한 사투리가 묻어났다. 지난달 11일 강서경찰서에 가서 마주 앉았을 때, 박 경감은 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형사가 누군가를 볼 때의 딱 그 눈빛이었다.

―강력계 형사라면 체력 좋고 싸움 잘하는 건 기본일 것 같은데 어떤가.

"형사의 체력을 말할 땐 육체적 힘이 전부가 아니다. 진짜 체력은 '이골'이다. 우리는 밤 12시에 퇴근했다가도 새벽 2시에 나오라면 뛰어나와야 한다. 큰 사건 터지면 그 상태로 하루 이틀, 때론 한 달 두 달도 간다. 그런 식으로 잠 못 자는 생활이 계속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 1초 실수에 범인을 놓칠 수도 있는 법이다.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형사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언제 끝날지 모를 그날까지 유지해야 한다. 이 모든 게 몸에 푹 배어 있어야 한다. 이골이 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다는 건 그런 뜻이다. 그게 진짜 형사의 힘이다."

―범인과 몸으로 싸워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힘이 나온다. 질 수 없다. 형사니까. 반드시 잡아야 하니까. 때론 깨물리기도 하고 흉기로 위협도 당하고 부상을 입지만 놓치지 않는다. 아니 놓쳐지지가 않는다."

―원래 형사 되기 전부터 힘 좋고 운동 잘했나.

"원래부터라는 게 어디 있겠나. 부족한 건 배우고 보완해야 한다. 힘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마라톤을 뛰고 수영도 했다. 주먹이 날아오는 걸 피하려면 빠른 눈이 필요해 복싱도 했다. 단순 근육을 키우는 게 아니라 진짜 힘 쓰는 근육을 키웠다. 70㎏ 넘는 남자 형사를 어깨로 업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건 열 번 이상 거뜬히 했다."

―범인과 격투를 벌이는 일이 자주 있나.

"그럴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실제로 경찰이 공격을 시작하면 맞서는 범죄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들에겐 도망가는 게 먼저다. 형사와 격투가 벌어지면 불리한 건 범인들이다. 형사가 빈틈을 보일 때 주먹으로 한 대 치거나 흉기로 찌르고 도망가는 경우는 있다."

―결국 형사라는 존재 자체가 힘인 셈이다.

"형사에겐 실제 무도가 몇 단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끼리는 일단 경찰이면 1단이고 그중에서 수사·체포 임무를 맡는 형사면 2단, 3단이라고 한다. 여기에 악착같이 달려드는 집요함, 끈기, 치밀함 등이 더해지면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긴박한 추격전이 벌어지면 잘 뛰어야 할 텐데.

"100m 달리기 하듯 죽어라 도망가는 범인을 따라잡긴 쉽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쫓기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는다. 먹이를 쫓는 맹수라고 할까. 청송교도소 출신 흉악범 8명이 젊은 남녀 한 쌍을 납치한 사건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녀는 구출됐고, 도피자금을 받으려는 범인들과 온양에서 추격전을 벌인 적이 있다. 범인은 키가 185㎝ 정도에 회칼을 갖고 있었다. 온양시장을 뺑뺑 돌며 몇 ㎞를 쫓았는지…. 그땐 정신없이 뛰었는데 나중에 돌이켜 보고 나도 놀랐다."

"사람을 사랑해야 강력계 재목이다"

어린 시절의 박미옥은 '바른 생활' 어린이였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말 잘 듣는 아이였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달라졌다. 대입 학력고사를 안 보기로 혼자 결심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학력고사를 치르던 날, 그는 불국사에 가서 하늘만 쳐다봤다.

―왜 대학 진학을 포기했나.

"난 7남매 중 막내였다. 부모님은 일찍부터 경제력이 없었다. 대구에 가서 결혼한 언니 오빠 집에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면서 학교 다니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는 나중에 다니면 되니까."

박미옥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선택한 사회생활은 '경찰'이었다. 그는 순경 채용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수많은 직업 중 왜 하필 경찰이었나.

"정말 순진하고 단순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경찰을 생각했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착한 경찰 말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모두 뜯어말리더라. 가장 친한 친구는 나에게 미쳤다고 하고…. 여경이란 개념 자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여경이 전국에 500명쯤 있었다고 한다."

―순경시험 치를 때부터 형사가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가.

"형사의 길로 들어선 건 정말 우연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에서 고참 여경들이 모여 있던 민원실에 강력계 희망자가 없는지 알아봐달라고 위탁했다. 당시 민원실장 김강자 경감이 '이게 되겠나' 하시더라. 별생각 없이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그래? 그럼 너 한번 가봐라'고 했다. 얼마 후 발표된 명단에 내 이름이 있더라."

―초창기 강력계 여형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여경 중 카리스마 있고 한 칼 한다는 선배들이 다 모였다. 태권도 국가 대표 출신과 영부인 경호 경험 있는 분도 있었다."

―강력계에 간 걸 후회하진 않았나.

"가보니 매일 상대하는 사람들이 범죄꾼이더라. 내가 뭐하는 거지? 왜 이런 사람들과 말을 섞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같이 술잔을 기울여야 하지? 그런 생각이 밀려들어 1년 만에 도망가려 했다."

―왜 도망가지 않았나.

"여기서 도망치면 다른 어딜 가도 어려운 일 있으면 도망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강력계에 맘 붙이고 일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3~4년 지나니 담당 형사가 돼 있었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경찰서에 찾아왔을 때 이것저것 묻고 의지하는 사람은 팀장이나 서장, 청장이 아니다. 바로 담당 형사다. 어디까지 알아냈고, 어떻게 수사할 건지 말해줄 수 있는 무게감, 책임과 의무가 내 어깨 위에 있었다. 그 존재감이 좋았다. 정말 열심히 했고 재미도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이 일이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일하며 나이 마흔을 넘기니 왜 형사를 하는지 알겠다는 느낌이 왔다."

―왜 형사를 하나.

"사람 때문이다. 내가 사는 그 세상을 사는 사람들 말이다. 피해자이기도 하고 범죄자이기도 하다."

그는 형사가 된 후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전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다. 형사 몇 년 하니 술이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가 되더라. 지금은 직원들과 술자리 가면 끝까지 간다."

―어떤 사람이 강력계 형사에 잘 맞는 스타일인가.

"맡겨진 일 잘하는 사람보다는 자기 일을 스스로 찾는 사람이다. 우린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서 범죄 사실을 밝혀내고 범인을 잡아야 한다.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없으면 범인을 뛰어넘지 못한다. 후배들에게 늘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강력계 형사의 재목이 된다'고 말해준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건 의외다.

"형사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느끼는 절망과 고통을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형사라서 범인을 잡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피해자에게 범인을 잡아주는 것밖에 없다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 더 간절하다. 이 간절함은 부족한 수사기법도 뛰어넘게 한다. 부족한 장비와 정보를 극복하고, 찾게 되고, 묻게 되고, 뚫고 해결하게 된다."

―강력계 형사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있나.

"섬세함(디테일)이다. 그리고 성실함이다. 또 진지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범인을 잡을 때까지 계속 유지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범인을 잡을 수 없다. 형사의 발품은 동문서답이다. 동쪽으로 뛰었는데 서쪽에서 답이 온다. 어디선가 단서가 툭 튀어나온다. 형사는 겸손해야 한다. 가끔 '아, 그거 해결합니다'라고 큰소리치는 직원이 있다. 뭘로? 자신감만으로? 그건 마음일 뿐이다."

"혼자서 조폭 수십명을 상대한다"

박미옥은 강력계 형사로 두각을 나타냈다. 순경에서 경위까지 9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했다. 범인 잘 잡아 특진했다. 순경→경장 진급 때는 1년간 범인 검거 실적이 가장 우수했다. 청송교도소 출신 납치범 검거 등으로 경사를, 탈주범 신창원·정필호 등을 잡는데 기여한 공으로 경위를 달았다. 범인 잡는 여경으로 여성지·신문 등 인터뷰도 여러 차례 했다. 그는 "내가 사건 복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복 많다는 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세상으로선 나쁜 것이고, 이왕 터질 것이 내 앞에서 터진 건 고마운 일이다."

그는 1998년 5월 신창원 검거 특별수사팀에 합류했다. 19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신창원이 경찰 검거망을 뚫고 도주하는 일이 반복돼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어떤 임무를 맡았나.

"처음에 신창원 일기장을 분석했다. 춥고 외롭다는 말들이 반복되길래 수색을 주택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자동차가 있는데도 춥고 외롭다고 하는 건 산속이나 낚시터가 아니라 도심 속, 사람들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 신창원의 여자에 주목했다. 주로 티켓다방 아가씨들이었다. 10여명을 만나 신창원의 모든 걸 알아내려 했다. 나는 당시 신창원을 가장 잘 아는 여자 중 하나였을 거다. 그런 뜻에서 나도 신창원의 여자다(웃음)."

―신창원을 만난 적도 있나.

"부산교도소 재수감 이후, 다른 지역 강도·강간 사건과 관련 있는지 조사하러 찾아갔다. 그는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하더라. '아저씨, 나 알아요?' 하니까 '예, 미용실 여성 잡지에서 봤습니다'라고 하더라.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다."

―왜 그랬나.

"이 친구는 내 얼굴을 아는 거다. 시골 마을에서 만났다면, 그가 50m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봤다면…. 그냥 도망갔겠지. 그랬으면 나는 코앞에 범인을 두고도 못 잡은 경찰이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 첫 여성 강력계장 박미옥 경감 1990년대 초반 여자형사기동대 시절, 강력 범죄 현장을 누비는 여형사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홍보용으로 찍은 것이다. 맨 왼쪽이 박미옥. / 이태경 기자
―가장 다루기 힘든 범인은 어떤 부류인가.

"인간적으로 사기범이 제일 싫다. 살인은 순간 욱해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사기범은 1년을 두고도 계속 사기를 친다. 뼛속까지 믿을 수 없다. 마약사범은 대개 치졸하게 위험하다. 자기가 두려운 것에만 집중하고 다른 생각을 전혀 못 한다. 왕복10차선도 마구 건너고 올림픽대로를 역주행하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건 소매치기다. 현장만 벗어나면 되는 존재라 무슨 짓이든 한다. 형사들 중에 칼 맞아 죽었다는 경우는 대개 소매치기 검거하다 당한 경우가 많다."

―요즘 강력범죄 양상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고전적인 범죄가 없어졌다. 힘들게 돈 버는 범죄는 안한다. 그래서 '강'자 붙은 사건이 예전에 비해 덜 발생한다. 쉽게 돈 벌 수 있는 범죄가 너무 많은 세상이 된 거다. 하다못해 휴대폰을 훔쳐 팔아도 되니까. 작년 서울시의원의 살인청부 사건은 최근 상황에선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조직폭력배는 어떤가.

"조폭은 족보 수사다. '너 양아치 아니잖아'라고 경고하면 뼈대 있는 걸 보여주려고 선 굵은 태도로 돌아서는 부류다. 조폭은 의리와 체면에 죽고 산다. 잡히더라도, 감옥에 가더라도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동생들에게 면이 서고 영웅이 된다. 그들도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돈이 없어 쩔쩔맨다. 결혼식, 부모 회갑연, 돌잔치 때 풀어야 할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더라. "

―조폭들에게 그런 약한 모습도 있나.

"멋진 차 여러 대 조달해야 하고 잔심부름 시킬 동생들도 왕창 데리고 가야 한다. 형님 안 죽었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자연히 돈봉투가 크고 두툼해질 수밖에 없다."

―조폭 상대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

"동생급에겐 '너 때문에 형님, 조직이 어려워진다'고 하면 끝나는 경우가 있다. 형님급에겐 '동생들 앞에 멋있게 가야지' '다른 동생들은 살려야지' 하기도 한다. 조폭만큼 말로 수사하기 쉬운 상대도 없다. 인맥과 기싸움이다."

―영화에선 형사들이 조폭들과 대대적으로 싸우는 경우도 있는데.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경찰이 조폭과 전면전을 시작하면 모든 조직이 다 죽는다는 걸 그들도 안다."

―현실에서는 어떤가.

"혼자서도 수십명을 상대한다. 강남에서 두목급이 납치된 적이 있다. 조폭 간 전쟁이 벌어질 판이었다. 어느 야산 식당에 조폭들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우리 팀장이 혼자 갔다. 이미 조직원 수십명이 모여 있더란다. '움직이면 전체 조폭이 죽는다. 너희끼리 직접 싸우면 안 된다'고 했다. 다행히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범인들은 6개월에 걸쳐 모두 잡았다."

"강력계엔 여형사가 꼭 필요하다"

올해는 여경에게 매우 특별한 해이다. 지난 4월 623명이 임용돼 전체 여경은 1만348명이 됐다. 1946년 출범한 여경이 70년 만에 1만명 시대를 연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올 연말이 되면 여경이 전체 경찰의 10% 정도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떤 분야, 어떤 직업을 갖든, 즉시 눈앞에 고속도로가 펼쳐지고 스포츠카를 주면서 달려보라는 세상, 그런 조직은 없다. 중요한 건 기회가 주어지는 곳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해보니 경찰은 여성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곳이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가는 건 당신이지, 조직이 당신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여경들의 강력계 지원이 많이 늘었나.

"여경이 많이 늘었음에도 강력계는 아직 여경들에겐 도전의 영역이다. 강서경찰서 강력계엔 8개팀, 40명의 형사가 있다. 여형사는 나 하나다. 산속 오솔길을 외롭게 걷는 느낌이다."

―2000년 최초로 여성 강력반장을 했고, 2010년대 들어선 마포·강남·강서에서 강력계장을 맡고 있다.

"반장 초기엔 직원 중에서 '여자 팀장이랑 일하니 좋으냐'는 식의 비아냥을 들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해병대·특전사 출신들이 오면 '여자 밑에서, 그것도 어린애 밑에서' 그런 말도 나왔고…. 그들이 무슨 죄인가. 나 때문에 그런 말을 들어야 하다니. 이 사람들에게 뭔가를 줘야 했다. 그들이 '우리 팀장과 같이 일해봐. 이런 게 좋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더더욱 긴장하며 살아왔다."

―강력계에 여경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다양한 시각이란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 이곳엔 경찰 중에서도 강한 남자들이 온다. 모든 해석은 자기 경험과 지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번은 경북 지역에서 50대 술집 여주인 살인 사건이 있었다. 시신 훼손의 잔혹함, 난장판이 돼 있는 사건 현장 등을 본 모든 남자 직원들이 '이건, 면식범 소행이다. 휴대전화 내용 확인하면 금방 끝난다'고 하더라.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내 눈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았다. 사건 현장엔 수많은 증거들이 널려 있는데 남자 형사들 눈엔 그게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 범인은 그 주점에 딱 두 번 간 손님이었고 우발적 범행으로 밝혀졌다."

―여자 형사들이 특히 더 경쟁력이 있는 일은 어떤 분야인가.

"공감하고 이해하는 '소통공감' 능력은 아무래도 여성이 더 낫다. 피해자와 가족은 형사들이 수사하는 걸 보고 위로받는다. 마음의 상처가 낫기도 한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형사가 단서를 찾고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형사와 한마음이 된다. 그럴 때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한다. 탐문·잠복·미행할 때도 여경이 유리할 때가 적지 않다. 범인이 방심하거나 눈치채지 못하니까. 인질극 상황에서 범인이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게 하거나, 자백을 받을 때도 장점이 있다."

그는 독신이다. 강력계 형사로 뛰면서 정신없이 사는 동안 세 번 프러포즈를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본질적으론 나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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